Hwang Gyung-hyun

Interview

일상이 예술이 되는 순간 _ 최정윤(2016) 2019-12-09

일상이 예술이 되는 순간


: 작가 황경현 인터뷰


최정윤 (독립기획자)


 

20166, 처음 황경현 작가를 만난 날의 기억을 떠올려본다. 바닥에는 큰 종이가 길게 놓여있고, 작가는 마스크를 쓴 채 엎드려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콩테 가루가 많이 날리니 주의하라고 했다. 시간대를 가늠하기 힘든 흑백의 풍경들이 종이 위에서 구현되고 있었다. 작가는 도시에서 삶을 이어가는 현대인들의 고단한 일상을, 기차역, 시장, 거리의 풍경을 통해 말하고 있었다. 매일 마주하는 익숙한 풍경임에도 생경하게 느껴졌다. 현대인의 바쁜 삶, 무한경쟁 시대 사회 속에서 겪는 고민, 예술의 의미에 관해 지속적으로 고민해 온 황경현은 이제 매체의 제약 없이 다채로운 실험을 펼쳐 보인다.

 

주로 무엇을 그리는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역마(驛馬)’를 주요 주제로 삼아 왔다. 역은 예전에 중앙관아의 공문을 지방관아에 전달하고, 벼슬아치가 여행하거나 부임할 때 마필을 공급하던 곳이다. 역을 주요 도로에 30리마다 두었으며, 이 역에 갖춰진 말이 바로 역마다. 역마는 한 역에서 또 다른 역으로 고단한 행진을 계속해야만 한다. 고달프고 처량한 신세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 시대의 도시거주자들이 생존과 투쟁하며 끊임없이 이동해야하는 모양새가 역마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내 작품에서 다루는 장소는 대부분 서울역, 용산역, 안산역 등 역의 풍경이다. 나의 이동 동선 상에 있는 곳 중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역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고, 작업실에 와서 그 장면을 종이 위에 옮겼다.

 

콩테를 재료로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재료 때문에 추가되는 작업 과정이 있는가? 나의 작업 성향에 가장 잘 부합하는 재료였기 때문이었다. 페인팅 작업을 하는 작가에게는 작업량이 매우 중요하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작업에서 중점적으로 드러내야 하는 부분이 노동이라는 행위가 아님에도 구현에 있어 노동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실제 작업시간은 유채나 수채를 사용하는 회화 작가에 비해서는 짧은 편이다. 그때그때 다르기는 하지만, 하루 꼬박 그리면 족자 그림에서 1m정도는 그릴 수 있다.

콩테가 인체에는 매우 해로운 재료라서 마스크를 항상 착용하고 창문을 열고 작업한다. 별도의 밑칠은 하지 않고, 완성되고 난 이후에 픽서티브(fixative, 정착제)로 마무리한다.

 

익숙한 풍경이지만 콩테로 종이에 옮겨지면서 실제 풍경과는 매우 다른 분위기를 갖는다. 정확한 시간대를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다.

흑백 그림의 기본적 구성은 인상을 전달하는 데 있다. 일상에서 흔하게 보는 장면이지만, 그것에 아주 미묘한 변화를 주게 되면 기억에 강하게 남게 된다. 그게 내가 회화에서 가장 흥미를 느끼는 지점이다. 풍경의 일부는 마치 무신경하게 지나쳐버린 나의 시선처럼 비워둔 채로 마무리하기도 하고, 장시간 노출해둔 필름처럼 여러 선들이 무질서하게 얽혀있도록 했다. 일상적 풍경에서 색을 모두 삭제하고 풍경의 일부를 삭제하거나 왜곡하기도 하고, 족자의 형태로 말아서 그 풍경이 끊임없이 계속 이어져나가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도록 했다.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회화는 마치 거울 조각같아서 그 매력이 점차 반감되어 간다. 매번 작품 설명을 하다보면 사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해 제작방식, 재료의 물성에 관해 토로하는 구조가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림 안의 풍경 자체에 관해 얘기하는 것보다도, 작품을 보는 방식을 다양하게 해보는데 더 중점을 뒀다.

 

회화 작품을 다양한 형태로 디스플레이한 게 눈에 띈다.

<()자 드로잉>은 흑백 종이 작품을 벽에서부터 바닥까지 이어서 설치한 작품이다. 그 위에 비닐 커버를 얹어서 관객이 직접 그 위를 밟고 지나갈 수 있도록 했다. <아치 드로잉>은 말 그대로 6m의 긴 드로잉을 아치 형태로 설치해서 붙인 제목이다. 또한 윈도우갤러리의 <액자 드로잉> 두 점은 조명이 위에서 아래로 직각으로 떨어지도록 해서 위에 걸린 작품은 강한 빛이, 아래 작품은 그림자가 가득 드리워진 형태로 걸었다. 이 전시가 단순히 회화 작품 전시라면 작품이 잘 보이게 전시하면 되는데, 그렇게 일방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조명부터 작품의 구조까지 관객 개개인이 각기 다른 보는 방식을 탐구할 수 있기를 바랐다.

 

<조각난 드로잉>은 말 그대로 작품을 조각낸 형태다.

하나의 막 혹은 종이 위에 가상의 풍경을 재현했을 때, 그 이미지는 어떤 역할을 할지 지속적으로 고민해왔다. 얇은 막 위에 수많은 레이어가 얹어졌을 때, 처음 내가 작품을 구상하면서 가졌던 의도와는 별개로, 재료의 물성이나 관객들의 보편적 경험, 지식을 통해 각기 다른 내용을 읽게 되고, 더 나아가 거기에 집착하게 된다. 관념 속에 존재하는 이미지가 실질적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그 몸체를 모두 드러내는 것이 불가피한데, 그런 요소가 일차적으로 차단될 수밖에 없는 답답함을 찢는 행위를 통해서 해소해보고자 했다. 찢는 작업을 구상할 때, 실제로 전시장에서 내가 없을 때 누군가가 내 그림을 찢으면 어떨까하는 상상을 해봤고, 그 상상을 현실로 옮겼다.

 

<공간 드로잉> 같은 경우를 보면,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확장된 듯 보인다.

일반적인 전시 형태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던 상황에서 내가 구현할 수 있는 작업의 영역을 어떻게 확장시킬 수 있을지 오래 고민했다. <공간 드로잉>은 우리를 비추는 세계 혹은 하나의 세계 그 자체인 거울에 구멍을 뚫는 것이다. 물리적인 구멍을 내는 것이 아니라 회전의 형태로 구멍을 만든다. 빙글빙글 돌리는 방식 말이다. 낮에는 거울에 경기도미술관의 리셉션 데스크가 보이고, 해가 지고나면 어둠이 자리한다.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알록달록한 유흥의 불빛, 인공적인 조명을 함께 사용했다. 노래방은 여러 사람들이 와서 소리를 내는 곳이다. 소리를 낸다는 것은 어떤 생물의 형태가 파장이 되어서 발산되는 것이다. 소리는 가장 자연스럽게 발생되고 또 동시에 휘발되는 어떤 형태라고 생각했다. 일종의 존재의 증거같기도 하다.

 

2016년 경기창작센터 오픈스튜디오 때에도 <노래방 프로젝트>라는 소리와 연관된 작업을 진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 원래 노래 부르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 발라드, 걸 그룹 노래까지 다양한 대중가요를 두루 좋아한다. 처음 경기창작센터에 입주했을 때, 방 안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노래를 불렀던 적이 있다. 작년에 진행한 오픈스튜디오 때에는 작업실 내부에 노래방 기계를 설치하고 관객과 동료작가들을 초대해서 노래할 수 있도록 했다. 각자의 목소리를 직접 드러내는 자리였다. 밖에서도 들리기 때문에 노랫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옮긴 사람들도 꽤 되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관객참여형 프로젝트였고, 일상이 예술이 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2016<보물섬> 전시에서는 <방주> 작업을 선보였다.

기존의 평면 작업에서 도시의 색채를 모두 제거하고 밤의 공간을 만들었다면, 대부도에서는 알록달록한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방주를 만들어서 띄웠다. 태어남에서 죽음까지의 시간의 흐름을 도식화 한 다음, 그 우주를 아치 형태로 휘어서 서로 마주보게 했다. 그것이 방주의 기본 형태이다. 단단하게 보호된, 떠다니는 어떤 것을 표현할 수 있었다. 거울 시트지를 사방에 붙여 도시의 유흥 불빛과 같이 빛이 산란되는, 몽롱해지는 상황을 연출했다. 실제로 전시장에 오는 관객에게는 야광봉을 하나씩 나눠주었고, 사람들은 방주 안에서 야광봉을 들고 춤을 추기도, 빙글빙글 돌기도 하는 등 다양한 움직임을 만들어 냈다.

 

2017년 경기창작센터에서 개최될 결과보고 전시에서는 <지라스>를 상영할 예정이라고 들었다. 처음으로 시도하는 영상작업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많이 이용한다. 페이스북과 같은 플랫폼을 이용하다보면 불법 토토라든지 사다리타기같은 광고가 많이 뜬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주로 그러한 광고를 클릭하고 돈을 지불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조금만 자세히 확인해보면 낚이지않을 수 있는데 어떤 면에서는 게으르고 무지하다고 생각했다. 대학생 시절, 미술대학의 교수들은 순진한 학생을 대상으로 학위 장사를 했고, 회사를 다니던 시절에는 그보다 더한 사기꾼들을 많이 만났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현실과 거리가 먼 이상을 주입하면서 맹목적 믿음을 갈구하는 찌라시를 만들어보고자 했다. <지라스>는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보다 미술품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이윤이 높으니, 미술작가에게 투자를 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글씨체나 디자인도 최대한 조악하게 만들었고, 실제 서류를 증빙자료처럼 첨부해 그럴싸하게 만들었다.

 

앞으로 계획 중인 작업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7월에 역마 시리즈의 4번째 개인전이 있어 준비 중이며, 실현할 수 있을지의 여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공모전 형식의 프로젝트를 계획 중이다.

20대 때에는 많이 바빠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패도 많이 해보고 그래야 나중에 몇 가지 주제를 더 발전시켜서 작업을 이어갈 수 있으리라고 본다. 페인터들의 에고 트립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작업을 하면서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힘을 얻는 것 같기도 하다. 에너지가 많을 때 최대한 많이 움직이고, 여러 시도들을 해보려고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