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 Gyung-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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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에서 허용된 오류와 그것을 허용하는 자세 _ 안소연(2018) 2019-12-09

회화에서 허용된 오류와 그것을 허용하는 자세

카르바마제핀 Carbamazepine(2018)

 

 

안소연 (미술비평가)

 

황경현의 작업은 매우 다양한 갈래로 나뉘는데, 그렇다고 그것이 또 전혀 상관없는 다른 범주들을 무작정 만들어내기 보다는 크고 작은 중첩을 이루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업은 변화 혹은 다양성에 대한 부담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아마도 그의 작업에서 유독 크게 부각되는 설치의 효과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러저러한 궁금증을 가지고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열린 입주 작가 개인전 카르바마제핀 Carbamazepine(2018)을 본 후, 황경현과의 대화는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1. 검은 그림과 파노라마 사진

황경현은 콩테로 특유의 검은 그림을 그린다. 대부분 그가 돌아다니면서 틈틈이 찍어둔 사진을 기반으로 그리는데, 눈에 띠는 것은 그림 크기와 상관없이 파노라마 사진을 활용해 시점이 애매하게 분열되어 있는 대상을 종이 위에 콩테로 그린다. 예컨대, 부산의 한 도시 풍경이나 쇼핑몰의 실내 전경을 파노라마 사진으로 찍은 후에, 그것을 출력해 검은 색 그림으로 완성한 것이 <Drawing(Square meter)>(2017)<Drawing(U-shape)>(2018)이다. 그밖에도 가로 세로 각각 20cm의 정사각형 크기의 종이에 검은 콩테로 다양한 풍경과 인물을 담아내 SNS의 사진 이미지 같은 효과를 드러내봤다는 여덟 점의 그림도 있다. <Drawing(Stroller)>(2018) 시리즈 중에는 가로 세로 100cm 크기로 동일하게 제작한 것도 있는데, 이처럼 그는 그림의 지지체가 되는 종이의 규격을 나름 숙고하면서 일정한 한계 혹은 범위를 설정해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모두 검다. 검은 콩테로 화면을 숨기기라도 하듯 유독 검음이 강렬하게 드러나 있어서, 우리가 어둠 속 들어가 한참 지나야 형상이 보이듯 검음 속에서 형상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야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형상을 쉽게 알아볼 수 없는 검은 그림의 속사정은, 파노라마 사진으로 왜곡시킨 풍경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어서 콩테의 마른 가루가 검고 두껍게 쌓아 올라가 있으나 곧 허공에 흩날려 버릴 수도 있다는 긴장감이 그림 속 풍경 또한 바스라질 것 같이 연약하게 덧붙여놓은 것 같기도 하다. 황경현은 콩테로 그린 검은 그림에서 파노라마 사진의 분열된 시점을 한껏 수월하게 드러낸다. 말하자면, 그는 파노라마 사진으로 거대한 풍경이나 빠른 움직임을 한 장의 사진에 중첩시켜 놓고, 그렇게 뭉개어 놓은 공간과 시간의 연속적인 장엄함을 그림의 표현적인 질감으로 대체해 놓은 모양이다. 확실히 그의 그림에서는 그것이 담고 있는 장소나 시간의 전경이 압도적으로 드러나기 전에, 먼저 콩테로 그려진 검은 그림의 텁텁한 질감이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짐작해 보건대, 그는 이렇게 회화의 질감을 두텁게 쌓아올림으로써 조형적인 요소들이 일으키는 감각적인 경험을 충분히 끌어내기 위해, 스스로의 당위성으로 파노라마 사진의 중첩을 회화의 빌미로 가지고 온 것이 아닌가 싶다. 결국 황경현은 검은 그림의 질감이 경험시키는 시지각의 오류를 긴밀하게 살피려 했던 것 같다.

 

2. 움직임이 있는 정지된 그림

황경현은 움직임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그는 내게, 자신의 그림이 애니메이션 같은 움직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영상이나 애니메이션으로 옮겨 갈 수 없는 연속을 보여주고 싶다는 말을 했다. 늘 그것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그렇다고 정확하게 이거다 하는 지점을 작업으로 드러내지는 못하고 있어 그 아쉬움을 말했다. 주고받은 대화들도 몇 번의 어긋남으로 힘들었으나, 그는 침착하게 자신이 작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지점에 대해 움직임연속이라는 단어를 반복하면서 설명했다. 가만 보면, 황경현은 어떤 대상을 정해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 못지않게 그 그림을 설치하는 방식, 즉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하는 문제에 깊이 다가가 있다. 시각적 오류와 모순을 회화적 경험으로 끌고 들어온 황경현은, 그것을 허용하는 작가의 적극적인 제스처를 지지체를 변형하는 방식이나 지지체를 배치하는 설치 방식으로 보여준다.

 

지난 개인전 Stroll on the City(세움아트스페이스, 2017)에서는, 그가 도시를 산책하는 시각 경험에 집중하면서 움직임을 극대화하는 설치 방안에 대해 고민했던 흔적이 강하게 드러난다. 예컨대, 두루마리 형태로 제작된 <Drawing (Scroll)>(2015-2017), 벽면과 바닥을 이용해 L자로 설치한 8미터 길이의 긴 그림에서 바닥 면 부분에 비닐을 덮어 그 위를 걷게 한 <Drawing (L-Shape)>(2017), 바퀴 달린 나무 지지대를 만들어 4미터 길이의 큰 그림을 아치형태로 구부려 놓은 <Drawing (Arch)>(2016) 등이 있다. 황경현은 특히 거대한 스펙터클처럼 도시의 풍경의 파노라마 같은 시각적 오류를 검고 큰 그림으로 시각화하면서, 그것을 경험하는데 있어서 동반되는 연속적인 움직임을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설치 방식을 시도해 본 것이다. 이번 개인전에서도 <Drawing(Square meter)>를 통해, 그러한 작가의 지속적인 관심을 드러냈다. 3.3 미터의 정사각형 크기로 바닥에 설치된 이 그림들 위에는 투명한 아크릴 판이 덮개처럼 올려져 있어서 관객들이 그 위를 딛고 작품을 보게 되어 있다. 1인 최소 주거 공간 크기가 적용된 이 틀은, 황경현이 거대한 풍경을 지각하는 개인의 폐쇄적인 시각 체계의 모순을 관찰하면서 특히 그가 관심을 보여 왔던 사진과 SNS를 매개로 한 연속적 시각경험의 메커니즘을 담아내고 있다.

 

3. 드러나지 않음을 보기

황경현의 작업은 보여주기를 꽤 의식하고 있다. 그는 항상 관객의 자리를 염두에 두고 있다. 임의의 관객들이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떻게 경험할 것인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의식하면서, 그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조율하고 통제한다. 앞서 언급했던 대로, 그림 안팎에 개입된 여러 가지 설치의 방식들이 그러한 작가의 의도를 크고 작게 드러내고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작가가 얼마나 작업과 관객을 균형 있게 매개하면서 개입하는가의 문제이다. 이번 전시에서, 황경현은 전시장 동선의 가장 마지막 자리에 <I saw the rocket in silver>(2018)를 설치했다. 그것은 전시의 시작을 보여준 네 점의 <비행>(2018> 시리즈와 일종의 대구를 이루면서 작가의 의도를 나름 엿보게 했다. 그가 이번 전시의 제목으로 제시한 카르바마제핀(Carbamazepine)”은 의약품 이름으로 그가 말한 디스키네지아(Dyskinesia)”라는 운동장애의 치료제로 설명된다. 이러한 정황들을 볼 때, 황경현은 시각적인 오류와 장애가 발생할 때 그것을 복구시키는 치료제로서의 기능을 회화적 표현으로 대체해 보고자 한 것 같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비행>은 유년시절 TV에서 본 은색의 반짝이는 미래의 이미지들을 환기시키면서 시공간이 모호한 비행의 장면을 포착하고 있다. 이러한 망상은 전시의 끝자락에서 시지각적인 실제 경험으로 다가오는데 그것이 바로 <I saw the rocket in silver>이다. 그는 어둡고 작은 공간을 반짝이는 것들로 채웠는데, 희미하게 반사되는 면들이 굴곡을 만들어 내면서 관객들의 움직임을 유도하는 셈이다. 관객은 마치 텅 비어 있기라도 한, 다시 말해 아무 것도 드러나지 않은 공간에 스스로 출현하여 자신의 움직임을 바라봐야 한다.

 

이 마지막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황경현은 어떤 모호함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혹은 보도록 하고 싶었단다. 그 말은, 그가 검은 그림을 그리면서도 내내 붙잡고 있던 시각의 오류이자 그가 작업에 개입할 빌미였다. 그는 아직 그것을 세련되게 조율하거나 효과적으로 매개하는 지점을 찾아내지는 못한 것 같다고 스스로 말한다. 하지만 그는 지난 몇 년 간 쉽게 가늠해 볼 수 없는 다양한 활동과 작업을 통해 그 접점을 모색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일련의 작업 과정들과 결과물들이 보다 정교한 논리 안에서 방향성을 찾게 된다면 작가 스스로 작업에 집중하는 강도가 더욱 효과적으로 분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