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 Gyung-hyun

Review

검은색으로 종이를 채우는 동행의 작가 _ 최성문(2019) 2019-12-09

검은색으로 종이를 채우는 동행의 작가

 

/ 최성문(소설가, 시각예술가)

 

황경현 작가의 그림이 걸린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검은색의 강렬함에 압도되었다. 흰색 벽에 걸린 모든 그림은 흑과 백으로만 이루어진 거대한 드로잉이었다. 멀리서 보면 그가 그린 게 무엇인지 금세 파악할 수 없지만, 검은색이 뿜어내는 힘과 활력은 대단했다. 황경현 작가의 드로잉은 선을 최대한 덜어내고 면을 많이 남기는 비움으로 이야기를 건네는 방식이 아닌 화면 가득 검은색의 채움으로 말을 건넨다. 그것은 빛이 먼저인지 아니면 어둠이 먼저인지 따져보고 싶게 하는, 그러나 쉽게 답이 나올 것 같지 않은 창조와 근원에 관해 토론해보고 싶게 한다. 질문을 주는 그림이라니! 문득 미술비평과 사회비평 소설 등 다양한 영역에서 글을 쓰며 그림도 그렸던 존 버거의 문장이 생각났다.

우리 같은 드로잉을 하는 사람들은, 관찰된 무언가를 다른 이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계산할 수 없는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그것과 동행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존 버거가 말한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계산할 수 없는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멈추지 않고 작업을 하는 건 예술가의 본질적인 태도일 것이다. 황경현 작가는 이 지점을 말하지 않고 직접 종이에 그려서 보여준다. 그가 경험하거나 관조한 세상, 필연이나 우연으로 만난 사람들과 동행을 멈추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는 종이에 빠르게 대상을 포착해 그릴 수 있는 콩테로 작업한다. 콩테는 수채화나 유화 아크릴처럼 물성을 이용해 화폭에 고착화하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콩테는 종이 표면에 떠 있는 상태로 있을 수 있는 재료다. 작가가 선택한 콩테는 그가 종이에 그리는 대상과 잘 어울리는 소재이기도 하다. 그는 많은 사람이 오가는 지하철 터미널 커피숍 마트 등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포착하는데 한곳에 정착해 있는 사람이 아닌 계속 움직이며 이동하는 사람들을 그린다. 건물을 그리더라도 건물 안에 누군가가 어떤 활동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게 한다. 그는 그가 그리는 대상과 함께 세상을 유영하는 작가다. 그의 동행은 마주 바라보는 방식에서 벗어나 중력에 영향받지 않는 몸이라도 된 듯 공중을 떠다니기도 한다. 종이에 그린 대상의 각도에 따라 작가가 자유로운 몸과 영혼으로 여행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의 그림은 사물의 정확한 형태가 도드라져 보이기보다 커다랗고 시커먼 하나의 덩어리로 다가온다. 마치 거대한 불길에 휩싸여 새까맣게 타버린 세상처럼 보인다.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마다 폐허가 된 도시를 그린 것 같은 그림을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면 높은 빌딩들이 저마다 화려한 빛을 뿜어내며 위용을 자랑하듯 번듯하게 서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가 묘사한 것과 달리 화상을 입은 것처럼 느껴지는 건 도시에서 살아가는 원자화된 인간의 외로움과 쓸쓸함이 그림에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나는 그의 대부분의 그림에서 온기를 느낀다. 그것은 점점 차가워지는 세상 속에서 인간애가 상실되지 않기를 바라는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사물의 형태가 어느 지점에서 일그러지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없는 듯 서로 연결된 것처럼 표현하기도 한다. 그것은 작가만의 시각으로 인물과 사건을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경험한 것들을 시간 순서대로 기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기승전결에 맞게 이야기를 풀어내더라도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는 이미지로 시간을 재구성한다. 꿈을 꿀 때 우리는 이것을 더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황경현 작가는 전혀 다른 시간 속에 있던 것들을 한 공간으로 불러내어 서로 자연스럽게 섞이도록 표현하며 그것들이 스스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도록 연출한다. 보이는 것 그대로만 보지 말고 그 이면을 들여다보라고 우리를 환기시킨다. 무의식의 세계를 보여주는 듯한 검은 그림들 앞에서 우리는 작가의 의도를 물을 필요가 전혀 없다.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재미는 온전히 관람객의 몫이기에 말이다.

그의 작품에서 흥미롭다고 느낀 실험 중의 하나는 두루마리 종이에 그림을 그린 것이다. 양쪽 혹은 한쪽으로 어느 정도 말려둔 그림은 다 펼쳐 보여주지 않는 효과로 보이지 않는 그림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나는 두루마리에 그림을 그린 행위를 통해 세상과 사람을 포착하는 작가의 시선이 겸손하고 영민하다는 것을 동시에 느꼈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이런 방식은 아직 세상을 다 경험하지 못했고 여전히 보여줄 것이 남아있다는 작가의 낮은 자세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끝이 아닌 과정에 있다는 형식 실험은 그다음 작업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한다.

황경현 작가는 2019년 제3회 국제오픈예술대회 아트 올림피아에서 최고상인 금상과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상을 받은 작품은 인간 국보 미술관에 소장되었다. 2년마다 열리는 아트 비엔날레 형식의 국제공모전에서 그의 검은 그림이 인정받은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상이 작품의 결과가 아니라 그가 동행을 멈추지 않고 또 다시 떠날 수 있는 출발의 신호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