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 Gyung-hyun

Review

다정한 검정과 애정하는 잔상에게 _ 오은서(2019) 2019-12-09

다정한 검정과 애정하는 잔상에게

 

오은서(독립 기획자)

 

 

멍하니 군중 사이를 걸어 다녀 본 적이 있다. 무슨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가야 할 도착지가 있는 것도 아닌 내가 당장에 느끼는 공허함을 소음으로라도 채워보고자 나갔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많았고, 시끄러웠다. 괜히 나왔다 싶기도 하다가 혼자 있으면 나약해질 것 같아서 그냥 생각 없이 방황했다. 아니, 생각을 없애려 했지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여러 사람의 말이 섞이며 화이트 노이즈가 되어 내 생각을 오히려 뚜렷하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황경현의 회화는 종이와 콘테를 사용하여 끊임없이 변화하는 도시의 야경이나 작가가 기억한 장면을 이어붙여 파노라마 형식으로 그려낸다. 그의 작업을 처음 마주했을 때, 그 날의 감정이 떠올랐다. 나만큼 작가도 군중과 도시를 마주 보고 있었을까. 하지만 내가 느꼈던 시끌벅적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들이 아닌 그의 작업 안에서의 군중은 조용히, 그리고 잠깐 머무르고 있었다. 빠르게 지나간 시간처럼 인상만 남은 사람들의 얼굴은 평소에 회화에서 인물에게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닌 흑백의 요소 중 하나일 뿐이었다. 작가의 시선은 점점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구도로 바뀌어 간다. 더는 수평적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시끌벅적한 공간에서 벗어나 보이는 것들을 뚜렷한 흑백의 대비로 만들면서 도시와 자신을 분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황경현은 군중 속에서 있을 때 그들과 감정을 공유하는 것 같이 화면에 그들을 조금씩 재현시켰다. 그는 사람들이 앉아있는 모습을 관찰하기도 하고 걷는 모양새를 흐릿하게 움직여 보기도 했다. 하지만 작가가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기 시작하면서 도시는 멈춰버렸다. 작가도 더는 움직이지 않았으며, 군중이 사라지고 건물만 남은 도시는 빛만이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아름다웠지만, 나에게는 절망적으로 보였다. 자본주의로 점철된 공간으로 도시는 끊임없는 생산과 퇴화를 진행하고 있다. 사라지고 갑자기 생겨나는 빌딩들, 그리고 알지도 못하지만, 몸을 부대에 끼면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도시에서 우리는 탈출하고 싶어 하면서도 내심 안주하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나는 끊임없는 현대화에 물들어버린 도시에서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것은 이 도시일 수도, 내가 하는 미술일 수도, 방금 지나 보낸 모든 시간일 수도 있다.

 

황경현의 흑백 회화에서 흥미로웠던 두 개의 관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하나는 재료이고 다른 하나는 설치 방식이다.

 

첫 번째로 최근 회화 작가들 사이에서 동양화, 혹은 종이와 연필을 사용하는 작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흑과 백, 간단하고도 명료한 두 색만을 사용하는 것이 화려한 색채와 진득한 물성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사실 충격이었다. 흑과 백은 두개의 색이라고 정의 내려져 있지만, 그 안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색의 단계를 조절할 수 있는데, 마찬가지로 황경현 작가도 종이 위에 콘테라는 매체를 사용하여 강약을 조절하기도 하고 문지르기도 하면서 화면 안에서 색을 만들었다. 하지만 기존의 단색 회화보다 황경현의 작업에 눈길이 가는 이유는 흑과 백으로만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 종이 위에서만 볼 수 있는 풍부하고 따뜻한 검은색 때문이다. 사실 건식재료는 가볍고 잘 날리는 재료이기 때문에 다루는 것이 어렵기도 했고 회화를 주로 다루게 되면서 구하기도, 접하기도 쉬운 유화, 아크릴을 자연스럽게 쓰는 경우가 많다. 나는 재료의 선택에 대해서 궁금증이 생겨 작가에게 물었다. 그가 종이와 콘테를 사용하는 이유는 자신이 보는 것들을 담기에는 유채와 아크릴처럼 물성이 있는 재료가 너무 무거웠다고 말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곳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쉴틈 없이 빠르게 변하고 있었고, 우리는 한순간의 감정 또는 분위기만 기억하거나 잊어버린다. 내가 느낀 그의 작업에서 보이는 풍경들도 흑백의 화면 안에서 인상만 남긴 채로 가볍게 머물렀다가 떠나간다. 황경현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가 선택한 재료 또한 그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로 이야기해보고 싶은 것은 작가가 기다란 작업을 설치하면서 사용한 방식이다. 커다랗고 긴 종이 작업은 끝이 돌돌 말려있었다. 우리가 아무리 그것을 들여다보고 싶어도 그가 의도해서 숨겨놓은 것을 함부로 볼 수 없다. 단순하게 길고 반복적인 도시의 풍경을 그렸다면 그저 흑백의 풍경화라고 느꼈을 테지만, 그가 도시를 걸어 다니면서 만든 기억의 조각들을 파노라마처럼 엮어 만든 것이라 끝이 더욱 궁금했다. 그래서 전시를 보고 나서 가장처음 황경현 작가에게 물었던 것이 저 말린 종이 안에 그림이 더 있느냐?’일 정도였다. 종이에 돌돌 말리면서 묻었을 두루마리 끝자락의 자국들은 도시의 얕은 환영 같다. 도시의 장면은 검은 자국만 남기고 사라져 버릴 잔상인데 작가가 진하게 붙잡아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가장 변화가 많고 최신의 것들이 모이는 곳의 풍경을 작가가 까맣게 태워버려 그것이 새로운 것이 된 지 오래된 것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미묘하게 과거와 현재를 섞어버렸다. 우리는 보고 있는 장면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인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인지 헷갈리게 되었다. 그리고 유일한 시작과 끝을 작가는 돌돌 말아 감추어버렸다.

 

황경현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도심의 풍경은 대체 뭘까. 나는 작가의 작업 중 빛만 남아버린 도시 야경을 보고 자본주의적인 이 시대의 절망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작가가 그리는 흑백색은 다정하다. 저기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이나 그들이 사회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만들어내는 빛과 어두움은 사실 도시 안에서 현재까지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는 이미 자본주의적 도시 생활에 발을 담갔고 꼭 맞는 옷처럼 적응해서 살아가고 있다. 어떻게든 딱딱한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도시는 사회에 발을 내딛는 첫 지면이자 지내야 할 곳, 그리고 관계를 맺어야 할 장소이다. 반복적인 생산과 퇴화가 만들어내는 현대화의 공간은 나에게 절망을 느끼게 했지만 결국 나 역시도 편리한 삶을 추구하며 결국은 이곳에 머무르는 것을 택했다. 작가 역시 도시는 멀어질 수 없는,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곳이지 않을까. 그가 주로 보고 있는 것은 꾸준히 변화하고 있는 얕은 도시의 잔상들이지만 그것을 드로잉북에 가득 남겨 놓은 것을 보면서 그가 기억하는 이곳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황경현 작가는 언뜻 보면 잘 그리는 작가로 인식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그림을 눈을 감고 기억해보면 도시 사이를 걸어 나가면서, 군중을 바라보면서 발견한 어두운 도시 안의 삶의 빛을 느끼게 된다. 도시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화할 것이고 그는 여전히 콘테를 들고 기다란 종이 위에 그가 본 잔상들을 기록하지 않을까.

 

그의 돌돌 말린 종이 안처럼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도시의 시간과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